정비법·도시개발법도 국토계획을 전제로 움직이는 이유
개발 관련 법들은 왜 결국 ‘국토계획’을 전제로 움직일까
정비사업이나 도시개발 이야기를 하면 “이 사업은 개발법으로 가는 거니까 계획은 뒤에 따라오지 않나요?”라는 질문이 먼저 나옵니다. 사업 이름이 ‘개발’로 시작하면, 그 법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듯한 인상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발 관련 법들은 대개 ‘무엇을 어디에 배치할지’라는 공간의 전제를 스스로 만들기보다, 이미 정해진 계획의 언어를 전제로 삼아 실행 절차를 설계해 둔 구조입니다.
개발법이 있어도 왜 계획에서 막히나 싶은 의문은, 개발법을 하나의 완결된 엔진으로 착각할 때 생깁니다. 국토계획은 누가 이기는 법이라기보다, 개발법들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먼저 정해주는 기준으로 작동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비법·도시개발법이 공유하는 공통 전제
정비법과 도시개발법은 서로 다른 문제를 다루는 듯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도시 공간을 다시 짜는 행위’를 제도화한다는 점에서 출발점이 같습니다. 다시 짠다는 말은 곧, 현재의 용도·기능·밀도와 같은 공간 설정을 재배치한다는 뜻이고, 이런 재배치는 계획이라는 공통 언어를 통하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럼 사업이 필요하면 계획은 자동으로 따라오는가?”라는 질문이 생기지만, 계획은 필요를 그대로 복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여러 기능을 함께 조정하는 좌표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정비든 도시개발이든, 사업의 내용은 달라도 결국 ‘어떤 공간을 어떤 원리로 바꿀 것인가’라는 계획 전제를 공유하게 됩니다. 개발법들은 이 전제를 바탕으로 절차와 주체, 방식과 권한을 정리하는 역할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발법들은 ‘계획 변경’을 전제로 설계된 구조입니다
개발 관련 법이 작동한다는 것은 보통 기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배치를 새로 정하거나 조정하는 상황을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공간의 배치를 바꾸는 일은, 단지 공사를 허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지역의 방향과 경계를 다시 정의하는 문제로 이어집니다.
그저 개발법이 허가를 주면 끝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허가는 대개 ‘계획으로 설명 가능한 상태’가 먼저 만들어진 뒤에야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개발법의 절차는 자연스럽게 계획의 정합성을 확인하거나, 필요하면 계획을 조정하는 단계와 맞물리게 설계됩니다.
개발법이 계획 변경을 전제로 한다는 말은, 계획을 뛰어넘는다는 뜻이 아니라 계획의 틀 안에서 변화가 공식화되는 통로를 마련해 두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정비사업도 결국 ‘계획 문제’로 귀결되는가
정비사업은 낡은 주거지를 새로 짓는 이야기로만 이해되기 쉽지만, 실제로는 도시 구조를 재편하는 결정들이 함께 따라붙습니다. 도로와 공원 같은 기반시설의 배치, 블록의 형태, 시설의 규모와 위치처럼 ‘도시의 작동 방식’이 같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냥 건축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건축은 개별 건물을 세우는 언어이고 정비는 도시의 조합을 바꾸는 언어에 가깝습니다.
도시의 조합을 바꾸는 일은 결국 계획이 사용하는 기준들, 즉 공간의 기능과 연계, 수용 가능성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래서 정비사업이 막히거나 지연되는 장면을 단순히 사업의 문제로만 보면 설명이 부족해지고, 많은 경우 계획의 전제에서부터 다시 정리되는 구조로 귀결됩니다.
개발법이 단독으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
개발법은 사업을 가능하게 만드는 강한 절차를 제공하지만, 그 절차가 붙들고 있는 대상은 ‘계획으로 정의된 공간’입니다. 계획이 정하지 않은 공간을 개발법이 임의로 만들어내기 시작하면, 같은 도시 안에서 기준이 제각각이 되어 설명과 예측이 어려워지고 행정의 일관성도 흔들리기 쉽습니다.
도대체 개발법은 왜 이렇게 세밀하게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그 세밀함은 계획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계획이 정해놓은 방향을 실제 사업으로 번역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개발법은 실행의 언어이고, 국토계획은 배치의 언어라는 역할 분담이 작동합니다. 이 분담을 놓치면 충돌처럼 보이지만, 구조를 이해하면 ‘개발법이 있는데 왜 안 되지’가 아니라 ‘계획이라는 전제가 먼저 맞아야 다음 질문이 열린다’로 정리됩니다.
결국 ‘다른 법을 보더라도 계획을 먼저 본다’는 결론
개발 관련 법들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장치로 보이지만, 그 장치가 작동하는 바탕은 국토계획이 제공하는 공간의 기준입니다. 정비법이든 도시개발법이든, 변화의 내용이 커질수록 계획의 언어로 설명하고 조정해야 하는 영역이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그럼 계획이 모든 것을 결정하나요?”라는 의문이 생기더라도, 계획은 결론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법들이 동시에 말을 걸 때 공통 좌표를 제공하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개발법을 읽더라도, 그 법이 전제로 삼는 공간의 설정과 방향을 먼저 확인하지 않으면 같은 문장도 다른 의미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결국 다른 법을 보더라도 국토계획을 먼저 봐야 한다는 이해는, 우열 판단이 아니라 법들이 함께 작동하는 순서와 전제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됩니다.
참고 및 출처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도시개발법.
국토교통부, 도시정비사업 및 도시개발사업 제도 해설 자료.
국토연구원, 정비사업·개발사업과 국토계획 간 구조적 관계를 분석한 연구 보고서.
도시계획학 분야에서 개발사업을 ‘계획 실행 수단’으로 설명하는 학술 연구.
공법 영역에서 개발 관련 특별법의 전제 구조를 다룬 일반 이론 자료.
